안녕하세요, KOICA 평화마을 PMC 사업에 파견 중인 오성근입니다.
저는 스리랑카에서 처음 개발협력 일을 시작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라오스를 거쳐 지금은 이 곳 캄보디아에 있습니다. 오늘은 첫 인사 대신, 제가 꼭 전하고 싶었던 한 분의 이야기로 시작하려 합니다.
소페아 씨의 넷하우스. 소페아 씨의 넷하우스. Trosek Chrum 마을.
소페아 씨는 44살입니다. 그의 가족은 크메르루즈 군인이었습니다.
피란은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였고, 떠나고 돌아오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1990년대 말, 잔당들이 정부에 항복하면서 반테이민쩨이 주 말라이 군에 정착했습니다. 소페아 씨가 자란 곳이 그 땅입니다. 정착은 했지만 땅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마을 곳곳에 지뢰가 묻혀 있었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 자체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땅을 일궜습니다. 카사바를 심고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수확이 끝나면 수집상이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헐값에 넘기거나 그냥 집에서 먹거나 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2023년, 평화마을 사업을 만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농업기술지도를 받았고, 넷하우스를 지원받았습니다. 작목반 리더가 되어 배운 기술을 이웃 농가에 전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농민들이 힘을 모아 수집상과 협상하는 법, 시장 수요에 맞춰 작물달력(크롭캘린더)으로 미리 계획을 세우는 법도 배웠습니다. 처음으로, 수확하기 전에 어디에 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됐습니다.
넷하우스 조성 당시, 관개 시설을 설치하는 중
넷하우스란?
철재 골조에 비닐 대신 차광망을 씌운 농업 시설입니다. 한국의 비닐하우스와 비슷해 보이지만 목적이 다릅니다. 비닐하우스가 열을 가두는 구조라면, 넷하우스는 바람이 통하면서도 강한 직사광선과 폭우, 해충을 막습니다. 캄보디아처럼 덥고 습한 기후에 적합하고, 농약을 줄인 안전 채소를 생산할 수 있어 시장에서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확한 채소를 오토바이에 싣고 시장으로.
그리고 작년 11월, 소페아 씨는 한국에 있었습니다. KOICA 초청연수였습니다.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건 소페아 씨였습니다. 한국의 선진 농업 기술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무언가 불이 붙은 것 같았습니다. 최고 평가로 수료했습니다.
KOICA 초청연수 수료식. 최고 평가로 수료했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미 다음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넷하우스를 더 늘리겠다. 배운 것들을 이웃 농가들에게 더 많이 나누겠다. 그런데 준비를 시작하려던 참에 국경 분쟁이 터졌습니다. 태국-캄보디아 접경 지역인 말라이 군에 포성이 들렸고, 마을 사람들은 짐을 쌌습니다. 소페아 씨도 가족을 데리고 피란을 떠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살아온 방식이 그랬듯, 또 떠났습니다.
돌아왔을 때, 작물들은 말라 있었습니다. 피란을 떠난 사이 아무도 물을 줄 수 없었으니까요. 마을 농가 대부분이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종종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기술을 가르치고, 시설을 짓고, 기술을 나누는 일들이-포성 한 번에 사라질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소페아 씨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을 때,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넷하우스를 더 늘릴 것입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한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소페아 씨, 피란을 다녀오고 작물 피해를 입은 후 -
저는 그 대답을 듣고 나서 조금 마음이 놓였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어서요. 캄보디아 신년(4월 중순)이 지나면, 소페아 씨는 다시 씨앗을 심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와 함께할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 또 찾아올게요. 캄보디아에서, 성근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