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자립마을을 찾아주신 여러분!
필리핀에서 파견 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1년 반째,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문득 돌아보니, 이곳에서 지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것을 알게 되기보다 오히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씩 달라지기 시작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뜨거운 햇볕, 저렴한 물가, 휴양지와 에메랄드빛 바다…
우리가 한국에서 떠올리던 필리핀의 대표적인 이미지들인데요.
오늘은 제가 현장에서 직접 살며 경험하고 깨달은, 우리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른 필리핀의 진짜 모습 5가지를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1. 필리핀은 1년 내내 덥다?

지난 4편에서 소개해 드렸듯, 필리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단연 “소브랑 이닛!(Sobrang init, 너무 덥다!)”일 것입니다. 하지만 필리핀 북부 루손섬의 고산도시 라 트리니다드(La Trinidad)에 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해발 고도가 높은 이 지역은 1~2월 최저 기온이 13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아침저녁으로 꽤 서늘합니다.
극심한 계절 변화(’Born in Extreme Weather’)를 겪으며 자란 한국인들에게는 온화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날씨이지만, 현지 주민들에게는 경량 패딩이나 두꺼운 재킷, 털모자를 챙겨 써야 할 만큼 춥습니다. 저 역시 어느새 현지에 적응을 했는지, 연말이나 연초에 라 트리니다드로 출장을 갈 때면 ‘설마 입을 일이 있겠어~’ 하면서도 한국에서 챙겨온 경량 패딩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어가곤 합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저녁이 되면 꼭 한두 번씩은 그 패딩을 꺼내 입기도 합니다!
게다가 필리핀에는 ‘버 먼스(Ber Months, 9월부터 12월까지의 크리스마스 시즌)’라는 특별한 시기가 있습니다.
9월(September)부터 12월(December)까지 이름 뒤에 ‘-ber’가 붙는 달을 의미하는데, 필리핀 사람들은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계절의 변화를 느낍니다. 마닐라 같은 도심 지역조차 이 시기에는 한국의 초가을 같은 상대적으로 선선하고 쾌적한 바람이 불어와 “아, 필리핀도 계절의 결이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다음 자립마을 다이어리 스포!
과연 진짜 'Ber Months'는 필리핀에서 어떤 의미이고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요? 다음 편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과연 진짜 'Ber Months'는 필리핀에서 어떤 의미이고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요? 다음 편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2. 현지에서 체감하는 진짜 도심 물가는?

마닐라의 중심 업무·상업지구인 마카티(Makati)나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BGC, Bonifacio Global City)에서 일상을 보내다 보면 현지 물가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체감하게 됩니다.
저희 집 앞 카페만 보더라도 커피 한 잔이 190~210페소(한화 약 4,500원~5,500원) 정도이고, 기본 식빵 한 봉지가 290페소(한화 약 7,300원 이상)에 달합니다. 한국의 프랜차이즈나 베이커리와 비교해도 결코 저렴하지 않은 수준입니다.
심지어 필리핀에서는 메뉴판에 보이는 숫자가 다가 아닙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메뉴판 가격만 보고 계산을 생각했다가, 실제 결제할 때는 부가세(VAT)와 서비스 요금(Service Charge)이 약 20%가량 더 추가되어 영수증에 찍히기 때문에 실제 지불하는 금액은 훨씬 높아집니다.
결국 필리핀의 물가는 단순히 ‘싸다’고 말할 수 없으며, 어느 지역에서, 어떤 라이프스타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차이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3. 필리핀하면 떠오르는 습하고 짭짤한 바람이 부는 바닷가?

한국에서 떠올렸던 필리핀이
세부 / 보라카이 / 야자수 / 에메랄드빛 바다였다면, 저의 사무실이 있는 메트로 마닐라 같은 도심 속 필리핀은
고층 콘도 / 오피스 빌딩 / 악명 높은 트래픽 그 자체입니다.
세부 / 보라카이 / 야자수 / 에메랄드빛 바다였다면, 저의 사무실이 있는 메트로 마닐라 같은 도심 속 필리핀은
고층 콘도 / 오피스 빌딩 / 악명 높은 트래픽 그 자체입니다.사무실 앞 콘크리트 빌딩 사이 쉬었다 갈 수 있는 멋진 공원과 출퇴근길마다 맞이하는 악명 높은 트래픽
한없이 여유로워 보이는 주말의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BGC)
(하지만 평일 오후 4시~8시 사이에 방문했다간 꼼짝없이 트래픽 지옥에 갇힌다는 사실! 
)

)상상했던 여유로운 휴양지 라이프와 달리, 저의 일상은 고층 빌딩과 수많은 차들로 가득한 도심 속입니다. 특히 마닐라 도심의 트래픽(교통체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해서, 겨우 몇 km 떨어진 거리를 이동하는 데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출장길에 올라 마닐라를 조금만 벗어나면 또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푸르른 논과 정겨운 농촌 풍경이 이어지다가, 북쪽으로 올라가면 웅장한 산악지대가 눈앞에! 필리핀은 단지 '휴양지'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다채로운 풍경을 품은 나라입니다.
4. 번역기도 손사래 치는 180개 언어의 나라 

한국에서는 필리핀을 ‘영어가 잘 통하는 나라’로 떠올리기 쉽습니다. 물론 공식 업무나 대외적인 소통에서는 영어가 유용하게 쓰이지만, 실제 현장 속으로 들어가면 훨씬 입체적이고 놀라운 언어 환경을 접하게 됩니다. 7천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에는 전국에 무려 170~180여 개에 달하는 각기 다른 지역 언어가 존재합니다.
당장 저희 관광두레 사업지만 보더라도 지역마다 사용하는 주 언어가 완전히 다릅니다. 사스무안(Sasmuan)이 있는 팜팡가 지역은 ‘카팜팡안(Kapampangan)’을 쓰고, 고산도시 라 트리니다드(La Trinidad)가 위치한 벵겟 지역은 ‘칸카나에이(Kankanaey)’나 ‘이발로이(Ibaloi)’ 같은 고유 언어를 사용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실제로 저와 함께 일하는 현지 동료들 중 한 명은 팜팡가 출신이고 다른 한 명은 벵겟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조차 서로 각자의 지역 언어로 말하면 전혀 알아듣지 못해서, 일할 때는 공용어인 따갈로그어나 영어로 소통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땅에 사는 5천만 인구가 모두 하나의 언어를 쓰는 한국인들에게는 참 낯선 환경인데요.
마닐라에서 듣던 말과 사스무안, 그리고 라 트리니다드 현장에서 듣는 말이 모두 다르고, 지역 주민들끼리 대화하실 때는 완전히 새로운 언어가 들려오는 경험. 이런 현장 파견자만의 실제 관찰이 더해질 때,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가진 다문화·다언어의 깊이를 온전히 느끼게 됩니다.
5. 필리핀 하면 형형색색의 전통시장과 과일 노점? 

동남아시아를 생각할 때 흔히 활기찬 재래시장과 길거리 음식, 노점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직접 살아보면 필리핀 사람들의 진짜 생활 공간 중심에는 바로 거대한 ‘몰(Mall)’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저희 사무실이 있는 마카티 지역(용산구 크기)에만 이렇게나 많은 몰들이 있답니다.
필리핀에서 몰 문화가 이렇게 발전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 년 내내 뜨거운 열기와 갑작스러운 폭우(몬순 기후)를 피할 수 있는 쾌적한 실내 공간이 필요했고, 치안 측면에서도 안전하게 보호받는 공간이 요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곳 사람들에게 몰은 단순한 쇼핑 장소가 아닙니다. 몰 안에 울창한 정원과 호수가 조성되어 있는가 하면, 필리핀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인 성당(차펠), 심지어 관공서까지 몰 내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밥 먹고 → 장 보고 → 카페 가고 → 영화 보고 → 산책하고 → 미사 드리고 → 행정 업무까지!
하루의 모든 일상과 문화생활을 몰이라는 하나의 안전하고 쾌적한 울타리 안에서 해결하는 필리핀만의 독특한 삶의 양식이 매우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뜨거운 나라, 해양도시의 나라, 휴양의 나라.
모두 필리핀의 진짜 모습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중 어느 하나만으로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설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관광두레 파견자로 현장을 누비며 제가 만나고 있는 필리핀은, 이곳에 오기 전에 알고 있던 모습보다 훨씬 다양한 얼굴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앞으로도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숨 쉬며 발견한 진짜 필리핀의 이야기, 그리고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자립마을의 첫걸음을 계속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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