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의 이야기 3] 살아있는 것들과 살아가는 하루

제가 살고 있는 필리핀은 연 평균 기온이 27도인 열대 기후 지역입니다. 한국은 4계절이 있어 겨울이 오면 동물들은 겨울 잠을 자고, 곤충들은 잠시 사라지고, 나무도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겨울을 날 준비를 하는데, 사시사철 푸르고 비가 많이 오는 필리핀에서는 동식물, 곤충들이 쉴 틈이 없이 일 년 내내 자란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만든 도로와 집이라고 해서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듯, 저는 여러 살아있는 것들과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출/퇴근길과 산책 길에는 무리 지어 다니는 개들을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습니다. 아직 위험에 노출된 적은 없지만 사업 현장을 모니터링 하다 보면 보건소에 개 물림 사고로 방문한 환자들도 꽤 많습니다.
(동네 골목대장처럼 개들이 길을 막고 있는 난처한 상황도 가끔 생깁니다.)
의외로 골목을 걷다보면 나무에 다리가 묶여있는 닭들도 종종 만납니다. 예전에는 닭고기나 계란 같은 식재료로 얻기 위해 키운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필리핀은 한국의 승마장와 같이 투계장(현지어로 Sabong)이 활성화된 곳이라 큰 수탉들을 집집마다 키워서 판다고 합니다. 집 근처 닭들이 새벽마다 우는 소리 때문에 힘든 시기도 보냈었어요.
(닭의 울음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날카롭습니다.)
또 이제는 거실 벽을 샤라락 기어 다니는 작은 도마뱀들을 보면 깜짝 놀라지만 귀엽고, 여전히 이름 모를 다리가 많은 벌레들과 엄지손가락 만한 큰 바퀴벌레들은 1년이 지나도 적응이 잘 되지 않고 있답니다. 이곳에서 함께 해야 할 숙명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요?
(한국에서는 애완용으로 키우는 경우도 많다고 하던데...)
언제나 좋은 것들과 함께 지내면 좋겠지만, 사업 지역에 가보면 강 주변이나 산악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들과 지내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안타깝게도 잦은 폭우와 습한 날씨는 모기와 같은 질병을 옮기는 곤충들이 더 많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저희 사업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주민들이 적응하고 이겨내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보건과 영양에 대해 교육하기도 하고, 아플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약품을 지원하고 있어요.
(벌레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숲 속 마을에서 살아가긴 쉽지 않을겁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루를 보내시면서 어떤 살아있는 것들을 만나셨나요? 제가 매일 보고 만나는 것들과 여러분들이 매일 삶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들이 너무도 다를 텐데, 가끔 내 주변에 어떤 것들이 함께하는지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