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한국에서 옷 좀 사서 보내줄까?'
나 : '저 요즘 회사에 유니폼밖에 안입고 다녀서 옷 필요없어요.'
부모님과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옷장을 열어서 회사 옷을 몇 개 가지고 있나 세어봤더니 7-8개가 되더라구요.
(색깔도 디자인도 겹치지 않게 참 다양하다.)
한국에서는 유니폼을 입는 직업이 대부분 정해져 있고, 보통 자기 옷을 입고 출근해서 갈아입는데 이곳에선 언제 어디서나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요. (한국에서 유니폼을 만들면 대부분 잠옷이 된다는 슬픈 전설이....) 한국에서는 대형마트나 동네에서 회사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본다면 엄청난 관심을 받을텐데, 여기서는 단순히 ‘출근복’이라고 하기엔 너무 당연하고 아무렇지 않게 유니폼을 잘 입고 다닌답니다.
(지역보건요원 유니폼은 평소에도 잘 입고 다니셔서 사업 홍보에도 참 좋아요!)
개인적으로 필리핀 사람들에게 유니폼은 단순히 옷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공동체 내에서 나의 일과 소속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공동체의 일부가 되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소속감과 자신감을 강화시켜주기도 하구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필리핀에서는 국내선 항공이나 배를 탈 때 회사의 사원증이나 학교 학생증으로도 본인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답니다. 그만큼 필리핀 사회의 분위기가 '나의 소속이 나를 증명해준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또 유니폼은 아주 실용적이고 경제적이기도 해요. 사실 매일 아침 출근하거나 등교하면서 '오늘 뭐 입지?' 고민하는 것도 은근히 큰 스트레스인데, 유니폼이 있으면 그런 고민에서 자유로워지고, 옷에 신경 쓰는 시간도 줄어들어요. 중, 고등학교 때 교복을 입으면서 사복을 많이 사지 않아도 되고, 아침에 고민 없이 입고 나갈 수 있어서 참 편했었죠.
(9월에 있을 행사 유니폼 사이즈를 신청하라고 메일이 왔습니다. 행사 참가 기념품으로 받는 경우도 있지만, 놀랍게도 '사비'로 구매한 유니폼들도 꽤 있답니다!)
오늘도 옷장에서 당연하게 유니폼을 꺼내 입는 제 모습을 보면서, 마음가짐도 그 옷에 맞춰져 가는것을 느끼고 있어요. 만나는 사람들 중 월드비전이나 코이카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본인이 후원자라고 이야기해주시는 분도 있었어요.
제가 일하는 이곳이 부끄럽지 않도록, 오늘도 당당한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여러분도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하루를 보내셨길 바라며, 다음 이야기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