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노인, 장애인, 임산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그들을 배려하고 있을까요? 예상외로 필리핀에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다양한 제도가 촘촘하게 갖추어져있고, 이들을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람들의 일상 속 문화로도 깊이 스며들어 있답니다.
먼저 제도적인 지원 내용을 살펴보면, 고령자나 장애인의 경우 의약품이나 교통비, 숙박비, 식비 등에 대해 20%의 할인, 부가가치세 면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 건강보험 가입 및 비용에 대한 지원이나 학비 등 여러 지원 프로그램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필리핀 사회복지개발부의 장애인, 고령자에 대한 정부 정책 안내문)
일상 생활의 측면에서는, 대형마트나 은행 창구 등에서 사회적 약자가 우선으로 응대 받을 수 있도록 '약자 우선 창구'가 항상 있습니다. 공항을 이용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는 곳에는 노약자를 휠체어로 이동하기 위해 많은 직원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 한국에서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주차하거나 주차 장소를 가로막으면 높은 과태료를 내는 것처럼, 필리핀도 이러한 위반에 대해 높은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대중교통에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좌석이로 지정되어 있고, 대형마트에도 우선 결제 라인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많은 직원들이 휠체어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
(지역마다 조례가 조금씩 다르지만,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을 위반하면 최대 5만페소(한화 약 12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는 내용의 표지판)
다만 이러한 여러 혜택들은 사회적 약자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제도이지만, 제도의 장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식당이나 카페에서 "NO FAKE PWD CARD"라는 문구의 안내문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거든요. 말 그대로 장애인등록카드나 경로우대 카드를 위조하거나 복제하여 사용하는 사례들이 많다는 뜻이겠죠? 필리핀은 아직 개인정보 시스템의 전자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카드 사용 내역을 로그북 공책에 수기로 기록하는 경우도 종종 보곤 합니다.
(가게 문이나 계산대 앞에 가짜 신분증 사용을 유의하라는 안내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정말 인상 깊게 느끼는 부분은 ‘제도’보다 ‘사람’입니다. 제도적인 부분도 상당히 촘촘하게 갖추어져있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약자에 대한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프니(대중교통)에 노약자 분이 타시면 자리를 자연스럽게 양보한다거나, 임산부의 짐을 들어드리거나 타는 순서를 먼저 양보해 주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트나 공공장소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좌석이나 줄이 비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 자리를 억지로 차지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2024년 World Bank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필리핀의 65세 이상 인구는 약 5.5%밖에 되지 않지만, 필리핀의 인구가 늘고있는 만큼 노인을 포함해서 장애인, 임산부 등 국민들이 배려해야할 사회적 약자의 수도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많든, 적든 중요한 것은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겠지요. 필리핀의 따뜻한 사회 분위기와 배려 문화를 보며 한국에서도 이런 따뜻한 마음과 배려가 제도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더 확산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