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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편-한푼 모아 두푼, 두푼 모아 지속 가능한 삶을!

여러분 안녕하세요,
케냐에 파견 중인 김예은입니다!
한국은 이제 제법 공기가 차가워지고, 가을이 깊어지고 있겠죠? 저는 매년 이맘때면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그토록 싫어했던 은행 냄새가 그리워지곤 합니다.
이곳 케냐는 반대로 햇살이 점점 강해지고, 사람들은 반팔을 꺼내 입기 시작하는 계절이 왔습니다. 한국의 가을이 그립지만, 이곳에서도 또 다른 계절이 시작되니, 또 한계절을 열심히 살아보고자 다짐하게 됩니다.
오늘은 ‘저축그룹'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한국에도 예전부터 친구나 이웃끼리 조금씩 돈을 모아 서로 필요한 때에 도와주던 ‘계(契)’라는 문화가 있었듯이, 케냐에도 이와 비슷한 모임이 있습니다. 바로 저축그룹인데요.
카지아도와 나록의 마을 곳곳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약속한 장소에 사람들이 모입니다. 어떤 그룹은 회관에서, 어떤 그룹은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또 어떤 그룹은 누군가의 집 마당에서.
누군가는 아이 학비를 내기 위해, 누군가는 농장을 확장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작은 가게를 열기 위해 모입니다.
모임이 시작되면 총무가 출석을 확인하고, 가운데에는 묵직한 철제 저축상자가 놓입니다. 세 개의 자물쇠가 달려 있고, 세 명의 ‘열쇠 지킴이’가 각각 열쇠 하나씩을 들고 와 상자를 엽니다.
이름이 불리면 각자 돈을 꺼내 일부는 빌린 돈을 갚고, 일부는 저축합니다. 혹시 돈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모두의 저축이 끝난 뒤 차례대로 금액을 이야기합니다.
이 모임은 모두가 함께 정한 규칙 아래 진행됩니다. 빌릴 수 있는 돈의 액수, 갚아야하는 기간, 벌금 등 각 그룹은 자신들이 정한 규칙아래 돈을 저축하기도, 돈을 빌리기도, 또 빌린 돈을 갚아나가기도 합니다.
월드비전이 이런 저축그룹을 만드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주민분들께 필요한 돈을 직접 드리는 건 쉽지만, 그렇게 한다면 1년 뒤, 10년 뒤의 삶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요? 저축그룹에서 돈을 다루는 법과 신뢰를 쌓는 과정을 함께 배우는 것이 조금 돌아가는 길일지라도, 지속 가능한 삶, 즉 자립할 수 있는 옳은 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이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기후변화 대응사업을 한다고 하지 않았나?’ 하고 의아하게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건 단지 나무를 심거나 물을 모으는 일만은 아닙니다. 기후 위기 속에서도 사람들이 안정적인 생계를 이어가고, 그 생계를 스스로 세워갈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 또한 기후변화 대응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축그룹에서 모인 돈은 누군가에겐 농장의 물탱크가 되고, 누군가에겐 꿀을 수확할 수 있는 벌통, 또 누군가에겐 작은 구멍가게의 시작이 됩니다. 어떤 그룹은 함께 자금을 모아 기후농법을 실천하고 생산량을 늘리는 공동사업을 하기도 합니다.
저축그룹은 단순한 금융 활동이 아니라, 기후 위기 속에서도 주민들이 스스로 설 수 있게 돕는 하나의 ‘회복의 과정’ 인 셈이죠. 한국 돈으로 만원, 이만원의 작은 돈들이지만, 모두가 소중하게 모은 이 돈은 하나 둘씩 모여, 가정의 경제를 지키고, 마을의 자립을 단단히 세워가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기후변화 대응이 단지 환경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삶, 그리고 가능성을 지켜내는 일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이곳에서 매일 배우는 것 같습니다.
10년 후, 20년 후,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대응하며 자립해 있을 케냐의 마을들을 기대하며,
오늘 일기는 이렇게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립마을에 보내는 관심과 응원 한 마디